정담나누기
최동수 문화일보 기사에서 63홈페이지.hwp
지난 9월 17일자 문화일보에 소생에 관한 기사가 실렸기에 소개합니다
“잘나가던 55세 대기업 이사때 ‘기타 만들려 사표낸다’ 했더니 회장이 ‘어디 아프냐’ 묻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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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전 ‘그’는 현대건설의 잘나가는 임원이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키워온 기타 제작의 꿈은 현대건설의 이사직도 마다하게 할 만큼 강렬한 것..
19년 전 ‘그’는 현대건설의 잘나가는 임원이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키워온 기타 제작의 꿈은 현대건설의 이사직도 마다하게 할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그동안 서정실, 변보경, 배장흠 등 유명 기타리스트들에게 악기를 헌정했다. 클래식 기타 마니아 사이에선 그는 이미 기타 장인으로 통한다. 1972년부터 본격적으로 기타를 만들기 시작한 그는 국내 20여 명의 수제 제작가 사이에서는 대부나 다름없다. 그의 기타 제작 수준은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일본의 기타박물관에 그의 작품 두 대가 있다. 기타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그를 명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는 바로 현대건설의 임원에서 수제 기타 제작자로 변신해 화려하게 ‘인생 2막’을 펼치고 있는 최동수(74) 장인이다. 그를 지난 13일 경기 고양시에 위치한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최 장인은 “남들은 젊은 시절이 그립고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최 장인은 기타 이야기만 나오면 마냥 행복한 모습이었고, 눈빛은 어린아이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기타와 기타 제작에 대한 얘기는 물론이고 100세 시대에 인생 2막을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기타의 장인으로서 인생의 노장으로서 값진 지혜를 풀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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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를 내고 기타 제작자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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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에서만 31년 동안 일했어요. 그중 18년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바레인, 인도, 싱가포르 등 해외 건설 현장에서 보냈지요. 1994년 신년 하례식 직후 사직서를 제출했어요. 쉰다섯 살이었고 직급은 이사였습니다. 고 박재면 당시 현대건설 회장께 사직인사를 하러 갔더니 ‘롯데, 삼성 가려고 그만두는 거냐’라고 물으시더군요. ‘기타 만들려고 합니다’라고 했더니 손가락을 당신의 머리에 대고 빙빙 돌리며 ‘어디 아프냐’고 어이없어 하셨어요. 개인적으로 회사에서 상한가를 칠 때였고, IMF 전이라 임원들에겐 정해진 정년이 없었을 때였으니 회장님의 그런 반응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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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그만둔 다른 이유는 없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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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제작도 제작이지만 어찌 보면 더 중요한 건 아내 때문이었어요. 사직서를 내기 직전인 1993년, 아내가 가슴이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갔더니 유방암 2기라는 판정을 내리더군요. ‘외로움도 암을 키운다’는 의사의 말은 제 가슴에 비수로 다가왔습니다. 얼마 뒤 아내는 수술대에 누웠고 가슴 하나를 잃어야 했습니다. 그때 결심했어요. 남은 세월 서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같이 살다 가겠다고. 당시 3억 원이면 평생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팔고 경기 고양시로 이사해 남는 3억 원이면 여생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을 거란 계산을 했어요. ‘설마 15년을 더 살겠어?’ 하며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던 게죠. 그런데 이렇게 인생이 길어질 줄은 전혀 생각을 못했습니다.(웃음) 가끔 아내와 그때를 회상하면 ‘우리가 참 바보였구나’라며 웃음을 짓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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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와 언제부터 인연을 맺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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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부터 통기타를 쳤습니다. 대학 다닐 당시엔 고급 기타가 없었습니다. 돈이 있어도 수제품을 살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내가 직접 만들어 보자고 마음먹고 일본에서 재료를 수입해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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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는 1년에 몇 대를 만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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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두 대 만듭니다. 완벽한 기타를 만들려는 철저한 프로의식 때문입니다. 한 대에 1000만 원 정도 하니 1년에 2000만 원 벌이는 합니다. 마음에 들 때까지 나무를 깎거나 덧붙여서 조율을 하느라 줄을 매고 푸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20년 이상 된 나무만 써 재료값만 200만 원 이상 들고, 습한 여름철엔 기타를 만들지 않습니다. 최근엔 공작부인이 연주하던 로맨틱 기타, 중세의 로코코풍을 재현한 프라임 기타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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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장인의 작품을 접한 한 유명 기타리스트는 원래 갖고 있던 4000만 원짜리 외국 명기를 팔고 그의 기타를 연주할 정도로 ‘최동수 표’ 기타는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기타 제작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유명 기타리스트들을 초청해 시연을 청한다. 문제점은 뭐고 좋은 점은 뭔지 의견을 듣고 최종 완성한다. 이렇게 해서 만든 기타가 지금까지 모두 32대. 일본의 기타박물관에도 처음엔 내놓을 생각이 없었다. 기타는 연주를 해야 생명력이 있는 악기인데, 전시만 하는 박물관이라면 내놓을 생각이 없었던 것. 하지만 대여를 통해 기타를 연주한다고 해서 ‘시집’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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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은퇴 준비를 하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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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 오동나무 서랍장으로 기타를 만들었습니다. 해외에서 생활할 때, 또 해외 출장을 가면 어김없이 기타 공방을 찾아가 마음에 드는 공구와 재료를 사 모았습니다. 퇴직 후엔 좀 더 제대로 된 기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열린 국제기타페스티벌에 참가해 기타 제작 과정을 수료했고, 미국 힐즈버그 아메리칸 기타스쿨에서 단기 코스를 밟기도 했습니다. 젊어서부터 여러 분야의 책을 읽으며 상상력을 키우고 인식의 폭을 넓히려고 노력했습니다. 4000권 정도 책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중 순전히 기타 제작과 관련된 책만 120권이 있습니다. 수도 없이 읽은 것은 물론이고요. 자연스레 평생 동안 은퇴 준비를 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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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에 대한 조언을 해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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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내지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과감히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려서부터 갖고 있던 꿈을 과감히 실천하는 게 중요한 게죠. 많은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부모의 ‘대리전’에 말려들어, 소질도 흥미도 없는 일을 많이 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고 소질 있는 일은 20, 30대가 되면 알게 됩니다. 이후 꾸준히 계속 공부해나가면 은퇴 후에도 저절로 할 일이 생깁니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어떤 일에 미치지 않으면 성취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즐거워서 일하면 돈도 생깁니다. 저도 실패를 숱하게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인생 2막에서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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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계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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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제작’(가제)이란 책을 올해 안으로 낼 생각입니다. 제가 만드는 기타는 매번 디자인이 다릅니다. 상품이 아니라 ‘작품’을 만듭니다. 그런 내용을 책에 담고 싶어요. 책엔 기타 제작 노하우는 물론, 제작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과 해결 방법, 기타 제작을 둘러싸고 200년 동안 벌어진 에피소드 등을 담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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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名器의 조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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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匠人의 기타 철학 :
최동수 장인은 모든 혼을 불어넣어 기타를 만든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그 자세 그대로 하루 10시간 넘게 집 지하의 공방에서 기타와 씨름한다. 그러다보니 작품 하나 만들고 나면 3∼5㎏이 빠진다. 그 가 생각하는 기타 제작에 필요한 정신을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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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선 ‘주의’와 ‘집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기타를 설계, 재단, 조립, 튜닝 및 칠을 하 는 처음부터 끝가지 필요한 정신자세이다. 한편 칼이나 톱을 사용하니 주의하고 집중해야 한다는 얘 기도 된다. 실제 그는 작업 중에 손가락을 크게 다쳐 응급실에 간 적도 있다. 기술이 필요한 점은 말 할 것도 없다. 거기에 판타지가 있어야 한다는 게 최 장인의 기타 제작 철학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우리의 에밀레종에 전설이 담겨 있듯이 말이다. 그는 “명품에서 명기(名器)가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명기란 뭘까. 그는 “세상이 인정하는 것이 명기다”라고 말한다. 기타에 생명을 부여한 최고의 기타 연주가로 널리 알려진 세고비아 같은 명연주자가 훌륭하다고 평가하면 명기가 된다는 것이다. 기타 소리에 대한 청중의 반응 또한 명기로 인정받는 중요한 조건이다. 그는 100대를 만들었을 때 명기가 될 확률은 2∼3%밖에 안 된다고 말한다. “기타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라고 말하는 그는 자신의 기타를 유명 연주자가 시연한 뒤 “촉촉한 맛이 없다”고 했을 때, “섭섭한 마음보다 오히려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며 활짝 웃었다. 자극이 돼 다음 기타를 제작할 때 더 분발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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